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른스트 텔만 (문단 편집) == 여담 == * 정세 판단 능력이 떨어졌다. 나치당의 힘을 과소평가하며 나치에 맞서기보다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지지층을 빼는데 골몰한 나머지 나치의 힘이 커졌음에도 사민당과 지속적으로 대립하는 근시안적인 행보를 보였던 것.[* 물론 이렇게 근시안적인 행보를 보였던 것은 당시 독일 정계 전반이 마찬가지였다. 1920년대 말 기준으로 득표율이 꼴랑 3%인 군소정당이 어떻게 독일 전체를 장악하는 정당이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결국 공산당과 사민당이 서로 힘을 뺀 결과, 나치당이 우익정당들과 손잡고 진짜로 집권하게 되자 그제서야 수습하려 했지만 타이밍이 너무나도 늦은 데다가 우연한 사건까지 겹쳐 결국은 비참한 말년을 보내게 된 스탈린주의자였다. 그러나 일관된 반나치 전적과 장기간 수감 이후 전쟁 막바지 처형이란 최후 때문에 전후 독일 공산당과 동독 정권에서 영웅시되고 높이 평가받았다. 나치의 영향은 철저하게 배제하지만, 여전히 국가적 정체성이나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를 주입할 필요가 있었던 [[동독]] 당국에선 [[스페인 내전]] 당시 독일인 국제여단원들과 더불어 사회주의 독일의 원류 정도로 추앙했다. * 그의 일대기를 다룬 선전 영화 [[https://www.youtube.com/watch?v=iUGaEwMH7is|<텔만: 계급의 아들>]], [[https://www.youtube.com/watch?v=K9qPIo4m2q8|<계급의 지도자 텔만>]] 2부작은 전후 복구 기간 동독 정권에서 큰돈 투자하여 만든, [[사회주의 리얼리즘]] 영화의 정수가 담겨 있는 영화로 크게 히트했기 때문에 텔만은 실제 정치인으로서 행적보다 나치에게 희생당한 순교자로서 대중에게 크게 각인되었다. 또한, 그를 기리는 찬가인 [[http://www.youtube.com/watch?v=_rJ3L5SDIWE|텔만의 노래(Thälmannlied)]]도 있었다. *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 제2공화국|공화국]]편에 서서 싸운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스칸디나비아 출신 의용군을 중심으로 한 1,500명 규모의 대대가 만들어졌으며, 그를 기리기 위해 '텔만 대대(Thälmann-Bataillon)'라고 이름 붙여졌다. 2차대전 당시 [[유고슬라비아]]에서 게릴라전을 수행한 [[요시프 브로즈 티토]] 휘하에도 1943년에 조직된 텔만 대대가 존재했다. 독일군 탈영병과 현지 독일계 주민으로 구성된 부대로 약 200여 명 규모였다. * [[스탈린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1928년 측근이 벌인 공금횡령 추문을 덮으려다가 텔만은 당 중앙위원회에서 축출되었다. 이때 [[스탈린]]이 개입하여 그를 위원장 자리에 복귀시켰고, 이후 당내 우파, 중도좌파를 비롯하여 자신에게 반대하는 세력을 깡그리 쫓아내 버린다. 이는 [[독일 공산당]]의 스탈린주의화의 시작이었다. * [[Hearts of Iron IV]]에서 독일의 공산주의 혁명가로 나온다. 하지만 독일은 공산 중점이 없어 사실상 있으나 마나한 인물이다. 공산독일 컨셉플에 기용되는 편. [[분류: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인]][[분류:1886년 출생]][[분류:1944년 사망]][[분류:함부르크 출신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